개 (2011)

 

 어느 해 제주 한라수목원, 자욱한 안갯속, 숲의 나무들을 둘러보며 걸었다. 한참을 걸어 다니고 있었는데 뒤에 흰 개가 따라 오는 것을 느꼈다.

내겐 먹을 것도 없었는데 개가 따라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그 개는 그 앞에 앉아 있었다.

뿌옇고 해 질 녘, 어렴풋해진 미묘한 풍경 속에 계속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 그 개의 알 수 없는 표정과 포즈. 그리고 개는 사라졌다.

 

 

 

 

우주 속에 개처럼 (2011)

 

지금 이곳에는 존재들이 있어.

오래되고 배고픈 영혼, 밀려나고 퇴화된 존재들이지.

저 멀리 가냘픈 바다 소리가 들리기도 해.

여기는 지구 밖일지도 몰라. 아니면 어둡고 깊은 외딴 섬 속의 섬일까.

이제는 이 섬도 침범할지 몰라. 이미 침범하고 있어.

우리는 지금의 내가 사라지기 전에 이곳에 와 있어.

미래의 나는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 있고, 미래의 빛은 아주 따갑고 강해서 점점 새롭고 눈 부신 것을 원하고 있을 거야.

두려웠어. 미래의 그들에게 잡힐 까봐. 그리고 나는 사라졌지.

 

 

 

야자수 (2012)

 

 나는 야자수를 모른다. 야자수뿐 아니라 모든 것을 모른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야자수를 보았다.

호텔에 있는 키가 크고 튼튼한 야자수들이 조명 아래 서 있었다.

숱이 없는 야자수가 태풍 속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그 야자수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달달달달로...세계의 끝 (2012)

 

 학교 다닐 때 종종 도서관을 갔었다.

강의실에 있던 시간보다 도서관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했던 건 공부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순전히 땅거미가 기는 지구와 태양과의 그 오묘한 관계의 시점, 마치 인생의 막장, 혹은 은근히 세계의 끝을 기대하며, 아름다운 해가 지기 직전의 풍경을 보는 변태스럽고 비밀스러운 일 때문이었다.

거의 매일 지나치는 거리 속 간판 위에 <노을> 이라고 씌여 있는 맥주 집인지, 커피 집인지 모를 모호한 오래된 가게가 보인다.

정말로, 정말의 노을이 지면 몇몇 사람들은 그 가짜 노을 속으로 들어간다. 그 세계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다 (2015)

 

 어떤 출구를 찾기 위해 동쪽으로 걸어갔다. 사실 동쪽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는 사이, 해운대에 도착해 있었다.

바다를 보지 않고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그 사람들을 찍었다.

 

 

 

 

그리기 (2009-2015)

 

 어느 날부턴가 내 등 뒤에는 말없이 그것들이 늘 붙어 있었다.

용산, 강정, 세월호, 콜트콜텍, 밀양. 이곳은 어딘가의 가장자리다.

나는 일렁이는 파문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나의 현실 유보, 자책과 망상을 빠지게 만드는 알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한다.

소통되고,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일까. 개인의 고민조차 무의미해지는 순간이다.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곳. 이제는 이 세계마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다. 눈을 감으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고 잡히지 않는 꿈들,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생각과 질문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어두운 숲을 헤매는 일, 멍함과 쓸모없는 짓의 반복이다.

 

 

 

화분 (2012-2014)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그 속도에 밀려 절벽 끝에 서 있었다.

그 앞에 깊고 차가운 바다가 보였다.

심연을 들여다보니 꽃이 없고 잎만 있는 화분 하나가 희미하게 보였다.

잎이 없고 꽃만 있는 화분보다 꽃이 없고 잎만 있는 그 화분이 좋았다.

첨 벙.

끝없이 낙하했으며 추락했다.

낙하하고 낙하하는 와중에는 짐승의 울음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개미가 기어 다니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귀 기울여 한참을 들어보니 그것은 큰 리듬 안의 거대한 하나의 신들의 합창이었다.

도착한 곳은 깊고 어두운 숲 속. 별들이 반짝였다.

잎만 있는 화분은 주춤거리면서도 조금씩 잘 자랐다.

폭풍이 불 때면 꺾이기도 했다.

시들어진 화분을 들고 한 단계 더 깊숙한 심연에 닿았다.

다시 제로(0)가 되었다.

단단하고 고요한 느낌이다.

어느새, 꺾인 잎 사이로 새 잎이 돋아나고 있다. 그 잎을 보고만 있다.

 

 

 

아무것도 아니다 (2009)

 

살다(生)

한 인간이 성장 통을 겪으며, 인간되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끝내 멈출 것만 같지 않은 울음은 계속 되어만 가고. 꿈꾸듯 의식과 무의식의 혼돈 속에 그가 있다.

과연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과거는 존재하며, 지금의 그가 누워있다.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에서 겪는 슬픔, 갈등, 방황, 불안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내는 공간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어쩌면 눈물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닌 눈꽃으로 우리의 가슴에 응원의 메시지로 남겨줄지도 모른다.

무채색으로 담아낸 그의 공간은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한 일종의 실험장으로, 더욱 그만의 상자속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