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의 뒷면_ 임경미 (박수근미술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무한한 공간 위에 빼곡히 쌓여져 있는 흰색의 상자들은 곧 무너져 내릴듯하다 이내 무너져 내린다. 그 상자들은 반듯해 보이긴 하지만 정방형이 아니고, 일정한 규칙을 갖고 있지 않으며, 견고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배경이 되는 공간은 음습해 보이며, 그 속에 등장하는 동물의 모습이나 인간의 모습을 한 형상들은 얼핏 외형만으로 짐작을 할뿐 공포감마저 든다. 그러한 어둠 속에서 혹은 알 수 없는 무한한 공간에서 무엇인지 모를 것들이 분출되듯 튀어 나오기도 뿜어져 나오기도 하며, 사라질 듯 피어오르기도 한다. 박명미의 작업은 머릿속 이해는 어렵지만 가슴속 불안은 쉽게 느껴진다. 그 불안의 요소를 소재로 택한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지금의 우리사회를 잠시 둘러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매스컴마다 다양한 범죄들을 고발하고, 과학의 발달과 무차별 개발이 지구 곳곳의 이상기후를 불러오며, 자본주의가 매겨놓은 가치에 따라 평가되는 경제의 불황은 해를 거듭할수록 회복이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듯 현대인은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지금의 현대인은 어쩌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박명미의 흰색상자들은 인간이 그동안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쌓아 올린 문명들을 대변한다. 견고하지 못한 문명임을 암시하듯 깨질듯 투명하고, 무너질 듯 틀어져있기도 하다. 어느 한 곳에선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다. 작가가 바라본 사회인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작가에게 이성과 합리를 앞세우고, 더욱이 완벽한 개인을 요구한다. 불완전한 존재인 작가는 이러한 불안한 사회가 완벽한 개인을 요구하는 모순된 상황에서 혼돈과 불안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한 작가는 어느새 본연의 모습을 숨기고 사회속의 자신을 가면을 쓴 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결국은 모든 것이 모순덩어리인 셈이다.

 

 ‘말(言)의 뒷면’이란 타이틀은 이렇듯 작가가 살아오면서 느낀 모순들을 함축하여 담았다. 그 의미는 언어의 모순일 수도 있고, 그 언어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순일 수도 있으며, 그러한 인간이 이루어 놓은 사회의 모순일 수도 있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단어(기표 signifier)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이나 관념(기의 signified)간에는 아무런 필연적 연관이 없다는 이론을 체계화 했다. 다만, 단어와 그 대상은 오랜 역사동안 지칭되어지고 그렇게 굳어져버린 것이다. 인간의 소리와 대상이 임의적, 자의적으로 선택되어 오랫동안 사용되어 그렇게 굳어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언어의 기록에서부터 출발했다. 결국, 우리의 문명은 체계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바탕위에 이성과 논리로 촘촘히 얽혀 세워져 있다. 박명미의 작업 속 흰 상자처럼 말이다. 인간의 규정은 이성과 체계를 내세울 뿐 자연의 섭리, 인간의 본성을 가리고 벽을 치듯 막고 있다. 그러한 혼란의 한가운데 위에 서있는 박명미는 작업으로 자신의 감정을 내뿜듯 캔버스의 검정바탕 위에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장기간의 교육으로 억압되어진 본성은 이성의 힘으로 다시 자신을 가다듬듯 하얀 문명을 그리고, 억압된 감정을 부정하듯 지우고 내뿜으며 다시 그 위에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그려나간다. 그러한 작업과정에서 박명미의 이성과 본성을 넘나들며 작업으로 승화시키는 번뇌와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작업의 과정을 통한 작가는 본연의 의지로 다친 내면을 치유하듯 붓으로 캔버스 위를 그려 나간다.

 

 ‘말(言)의 뒷면’이란 타이틀로 언어의 모순, 사회의 모순 그 안의 자신의 모습 또한 모순임을 이야기 하고 있는 박명미는 그 불안의 요소를 미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불안은 보다 성숙한 미래의 필요조건이다. 이러한 불안한 요소들이 작가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 가는데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일지 모르나, 자기불안에서 실마리를 찾아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닌 미로 승화시켜,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존재에 의문을 갖고 풀어간다. 이러한 과정은 작가로서 충분한 자양분의 요소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깊은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