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드로잉>

 

 줄곧 지나가는 길 위에 곧 사라질 것만 같았던 도시속 숲. 밤 산책길에 멈추고 보았던 곳은 방치된 장소처럼 보였다.

그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개발이 진행되었다. 날씨는 매일 달랐고, 나의 감각도 달랐다.

내가 만났던 그 숲의 나무들 냄새들 그때를 떠올려 본다. 선하나 긋는다. 또 긋는다. 매일 선을 긋고 그것들이 쌓이면 지운다.

여러 날 같고도 다른 선들을 긋고 지움을 반복한다. 그리고 새 날, 오늘 다시 그린다.

어제의 그림은 반복됬지만 오늘과는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 그림은 완성이 무엇인지 모른 채, 목적없이 흘러간다.

한 장의 그림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알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있다.

 

 

 

<꽃드로잉>

 

 오프닝에 받았던 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향이 진해진다.

진해진 향들을 더 맡아보기 위해 진열장 위에 꽃들을 방치해 두었다. 처음 만났던 꽃들보다 시들어진 꽃들은 진한 향들로 존재감이 더 커진다.

향이 없어진 꽃들은 점점 더 시들고 메말라간다.

시간의 흐름에 꽃들을 고정시키기 위해 매일 꽃들을 드로잉하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꽃들은 조금씩 매일 달랐다.

그림은 반복되는 행위 속에 어떤 완성으로 되어가는 목적도 없이, 비슷한 듯 다른 형태로 남아 있으면서도 없다.

 

 

 작업노트(2013-2019)

 

 그동안 현실의 삶과 사회적 사건들을 혼합 성찰해가며 자본이나 권력에 사라지는 것들, 밀려나는 풍경, 그런 흔적들을 바탕으로 드로잉하는 형식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의 작업은 사라지는 것을 그때의 기억, 감각으로라도 붙잡고 싶은 간절함에서부터 시작된 같다.

발견된 죽어가는 나무를 다시 심고 같은 시간에 물을 주고 그날의 감각으로 매일 그린다거나 곳에(주로 레지던시 경험) 머물며 주변의 제거 잡초를 채취해 키워서 팔고, 팔리지 않고 남아 결국 죽어 버린 잡초를 이듬해 새로운 지역에 심고 몸의 기억에 의해 장소를 찾아가는 드로잉.

죽은 화가 화판의 흔적 위에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밀려 날것 같은 풍경을 그리고 다시 변화된 장소에 그림을 들고 찾아가는 행위등 어쩌면 의미 없는 그러나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어떤 작업 이어오고 있다.

이것들은 서로가 연결이 되어있는 같기도 하고 아닌 같기도 하다.

사라짐, 그리고 부재하는 것들이 다시 새롭게 생성될 어떤 순간을 목도하고 싶은 걸까. 이것을 회화의 언어로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싶다.

수많은 선과 지우기를 반복하는 드로잉은 기억해내기의 예민한 과정이 오랜 시간 수반된다.

완전한 추상도, 구상도 아닌 형상들은 붓을 놓는 순간의 흔적으로 존재를 희미하게 드러낸다 일련의 과정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 마음, 방식일 것이다.

흐릿한 흔적같은 그림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 있는 없고, 회화의 언어가 어떤 소통이 가능할까 문득 회의적인 생각이 덮치기도 한다정답은 없다.

허약한 것들이 사라지는 상황을, 허약한 내가, 회화의 언어로 붙잡고 싶고 고정하고 싶고, 그렇게 계속해서 부재하는 것들을 향해 있는 아닌가 싶다.

그것이 끝내 불가능한 것임을 알지만(절대로 고정될 없는 것을되찾지 못해도 기다려 보는 점점 그것들을 향해.